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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적 마을 글의 상세내용 : 글의 상세내용을 확인하는 표로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 첨부, 내용으로 나뉘어 설명합니다.
제목 질문 범죄적 마을
작성자 이** 등록일 2024-01-13 조회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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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 개수작 공동체 이야기 16 -

마을이란 원래 물리적 공간의 범위를 표시하는 최소 단위이기 이전에 생활의 공동체적 관계망이 비교적 촘촘하게 형성되는 범주를 나타내는 전통적 의미의 윤리 자생적 인보 단체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안에서 통상 도덕적 규범은 불문율로 존재하면서도 결코 성문법에 뒤처짐 없는 막강한 저력을 지니고 보다 강력하게 작동하게 됩니다. 체질이 건강한 마을일수록 이 전통적 규범의식이 구성원들 상호 간의 신뢰관계를 굳건하게 뒷받침하면서 하나의 완전한 구심점 역할을 도맡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건 이미 흘러간 옛 노래에 지나지 못하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노랑 손수건 같은 걸로 빛바래고 퇴색해버린 지 너무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그런 아름답고 동화책에서나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은 시골 마을 풍경은 이제 전국 노래자랑에도 안 나옵니다. 골동품 가게에도 없습니다. 시골 마을은 이미 범죄자들의 안마당이 다 되어버렸습니다.

-개소리 개수작 공동체... 땅이라도 꺼지라는 듯 박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들어 추장을 마주 바라보았습니다. 첫날 경찰 조사를 받고 온 추장은 돌아오자마자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보전하고 드러누워버렸어요. 급하게 연락을 받고 집으로 찾아 온 박사를 맞이하는 추장은 마지못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내가 평생을 오직 이 마을을 위해 진심을 다해 봉사해왔는데 이게 대체 뭐야. 나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어. 너무 억울해, 손녀 딸 또래의 여자 수사관 앞에서 나는 다른 생각 아무것도 들지 않았어. 집에만 돌아가면 집 사람에게 같이 죽자고 말해야겠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 우리가 죽으면 이 경찰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사건을 수사해서 우리들이 얼마나 억울하게 당했는지 철저하게 수사하게 될 것 아니겠냐는 생각만 자꾸 들었어. 나는 정말 너무너무 억울해.”

그건 사실 평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추장의 모습이었습니다. 작달막한 체구에 다부진 눈매, 그리고 아무나 쉽게 범접할 수 없을 것 같던 논리 정연한 언변으로 언제나 주변 인물들을 압도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며 당당하게 살아오던 추장이 이렇듯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듯한 모습을 드러낸다는 일은 상상하기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죠.

“형님, 왜 이래요? 혹시 뭐 잘 못 드시고 체하시기라도 한 거예요?”

박사는 애써 표정을 다스리며 추장을 마주 보며 퉁명스러운 어투로 대꾸하였어요. 그러나 박사 역시 얼마 견디지 못하고 평정심을 놓아버리고 말았죠.

“이 나쁜 놈들...”

박사는 허공중을 노려보며 혼잣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가장 가깝고 절박한 결과에 반응하기 마련인 것이죠. 하지만 훈련받은 지성은 우선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기 전에는 섣불리 행동하지 않습니다.

“형님, 일단 맞고소부터 합시다. 놈들을 무고 죄로 고소해야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어제저녁 내가 써 둔 무고죄 고소장 초안을 보여드릴 생각이었어요.”

“내 혐의가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무고 죄로 고소할 수가 있겠어. 그리고 내 혐의가 밝혀진다는 보장도 없잖아. 드라마 같은 것 보면 죄 없이 감옥살이하는 경우도 많잖아.”

“형님! 대체 왜 이러세요. 지금 혐의가 밝혀지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형님은 죄지은 것 없잖아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형님 자신이 알고 있잖아요. 그럼 됐죠. 그까짓 남이 날 어떻게 알아주느냐가 뭐 그리 대단해요,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하시란 말입니다. 다 늙은 영감탱이가 눈물바람이나 해대고... 자신에게 부끄럽지도 않아요?”

이성의 홰울림을 회복한 박사의 목소리는 어느덧 제자리를 찾아서 단단해지고 있었어요, 누가 뭐라고 해도 인간의 사회 속에는 공통의 원천이 있기 마련이고 이 공통의 원천이야말로 자신의 지적 능력에 대한 통일적 중심에 대한 인식이며 모든 행동의 지침이 되어야 함을 박사는 누구보다 명쾌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모든 신뢰는 자신이 인간이라는 자부심으로부터 샘솟아 오르는 법이니까요. 사람이기 때문에.

그날 박사는 더 이상 긴 이야기를 추장에게 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나 그날 이후 추장은 사뭇 달라진 마음가짐으로 경찰 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됩니다.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서 지나간 날들의 영수증이나 장부 조각 들을 일일이 챙겨서 자신이 무죄함을 입증하기 위하여 무척 노력했죠. 무죄... 존재하지 않는 죄를 가리킵니다. 존재하지 않는 죄에 대한 존재적 입증... 그것은 아마 억울한 일을 당했던 사람만이 경험해 볼 수 있는 피 말리는 고통의 순간들이었을 거예요.

한 편 추장 부부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경찰 수사를 받는 동안 된장과 강간 일당은 세상을 다 차지하기라도 한 듯 의기양양해서 온 동네를 다 휘젓고 다닙니다. 추장의 억대 공금횡령 건은 이미 여론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난 채 인심은 사납게 표변해서 추장 내외를 바라보는 눈빛들은 차마 마주하기 거북할 지경으로 싸늘하게 식어가기만 했어요. 물론 변함없이 추장을 신뢰하며 격려와 위로의 대오를 흩뜨리지 않고 경찰 수사를 지켜보고 있는 일련의 동네 사람들도 있었죠. 자연스럽게 동네 인심은 양분되고 이 틈새를 비집고 독버섯처럼 만연하기 시작한 불신과 반목과 갈등의 혼란한 양상은 날로 악화되기만 하죠.

이 혼란하고 어수선한 틈을 타고 된장과 강간은 기어이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탄생시킵니다. [개소리 공동체 주식회사]의 설립 등기가 완료되던 날 된장과 간강 일당은 감격에 겨워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춤을 추었는데 소문에 의하면 이날 된장의 상간녀 나가요가 시내 노래방에서 비키니를 벗고 봉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 개소리 공동체 마을 관련 민간 업체 등의 담당자를 찾아다니며 된장과 간강이 벌인 일련의 영업활동은 얼마 후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마을을 떠다니며 풍문에 풍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렵사리 박사의 손에 들어온 [개소리 공동체 주식회사]의 등기부 등본 한 통은 소리 없는 폭탄처럼 조용히 폭발합니다.

“이것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까.”

​약간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보태며 박사가 내공에게 내미는 서류 조각은 풍문으로만 들리던 그 [개소리 공동체 주식회사]의 등기부 등본이었습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박사가 건네주는 서류 조각을 대충 훑어본 내공이 서류를 다시 박사에게 건네주며 의아하다는 듯 반문했습니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물건이니 요샛말로 치자면 갑툭이죠. 하하하...”

“그렇군요. 그런데 실제로 이런 성격의 법인체가 설립 등기 가능한 건가요?”

눈앞에 두고도 차마 믿기지 않는 현실 상황은 일상 속에서 가끔 등장하긴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현실 상황을 가리켜 엄연한 현실이라고 부르죠.

“ 그게 기가 더 막히는 것은 저 인간들이 마을 기금을 빼돌려서 설립자금을 삼았다는 점이죠. 법무사 비용까지 전액 마을 기금 통장에서 빼돌려서 지분 분배까지 다 마쳤다는군요.”

본 회사는 다음 사업을 경영함을 목적으로 한다. 1, 개소리 공동체 마을 소유 부동산의 임대 및 매각. 1, 개소리 공동체 마을 소유 부동산 이용 수익사업. 1, 개소리 공동체 마을 소유 모든 이권의 독점적 관리. 1, 개소리 공동체 마을 지역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민간사업 관련 자릿세, 텃세 일체와 이권의 완전한 독점적 관리. 1, 위 각호와 관련된 부대사업 일체.

“ 으하하하!... ”

서류 조각을 다시 한번 천천히 훑고 있던 내공이 도저히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별안간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게 그리 우스운 일인가요?”

그동안 내공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추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내공에게 물었습니다.

“아닙니다. 우스운 일은 아닌데 웃프서 그래요. 하하하... ”

내공은 여전히 우습다는 듯 웃음을 멈추지 않았어요. 그리고 박사와 추장을 번갈아 보며 말했어요.

“기왕에 일이 이렇게 된 것. 우리도 차라리 일찌감치 주식회사 하나 차리면 어떨까요? 우리는 [대한민국 주식회사]! 대한민국 소유 부동산의 임대 및 매각, 자릿세 텃세 일체, 부대사업 전부를 다 관리 감독하는 [대한민국 주식회사] 어때요? [개소리 공동체 주식회사]보단 한 수 위 아닙니까? 하하하...”

그제야 의문이 해소된다는 듯 추장과 박사도 따라서 웃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내공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차분하게 이르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했습니다.

​“ 제 생각은 말입니다. 이건 범죄 행위가 아니라 범죄를 회임하고 있는 범죄 단체의 모태 정도로 여겨집니다. 아직은 매우 유치한 단계 같아요. 하지만 곧 행동하기 시작할 것처럼 보여요. 갖가지 재미나는 범죄 생쇼가 펼쳐질 것 같아요. 따라서 아직은 현피를 뜰 계제는 아닌 것 같으니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것이 어떨까 싶네요. 더욱이 우리가 무슨 예방 주사기 같은 능력을 지닌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범죄자들의 천국이 건설되도록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소리로 들리네요.”

은밀하지만 언제나 매우 신속하게 나타나서 인간 사회의 공동체적 삶을 여지없이 파괴해버리는 모든 범죄의 잔학함이나 폭력성에 대해선 새삼 이야기할 필요조차 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잠재하는 잔혹한 범죄에 대해서 염려하고 경계하지만 아무리 목에 피가 터지도록 외쳐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범죄의 사각지대는 늘 있어 왔던 것이 엄연한 현실인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추장님에 대한 된장 일당의 무고와 선동과 각종 패악 질은 그 최종 목적 달성을 위한 극히 기초적인 밑그림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소리 공동체 주식회사]의 등장은 사뭇 스펙터클한 한 편의 나래이티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둠이 가장 짙어질 때가 새벽이 가장 가까운 시점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신뢰하고 의지해야 할 대상은 단지 대한민국은 분명한 법치국가라는 점 말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인가요? 좀 어렵네요. [개수작 공동체 주식회사]의 초법적 나와바리가 해피 해피할 것 같네요.”

말을 하면서 박사는 내공의 동공을 날카롭게 파고들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내면에 축적되는 분노의 덩어리를 무거운 목 넘김으로 가까스로 참아내고 있는 고통의 눈빛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우리가 지닌 것이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요...”

마치 치부를 들켜버린 부끄러운 사람처럼 내공의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 가늘게 떨리며 어딘가 간신히 숨을 곳을 찾아 잦아들고 있는 것처럼 들렸어요. 그것은 마치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던 어느 늙은 시인의 외로운 넋두리처럼 무척 쓸쓸하게 여겨지기도 하였어요.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감상을 압도해버립니다. 현실 세계에선 언제나 법보다 주먹이 가깝습니다.

이튿날 아침 이 산 아래 작은 마을에는 일대 빅뉴스가 폭탄처럼 파열음을 터뜨리며 마을 방송용 확성기를 통해 안개처럼 자옥하게 퍼져나갑니다. 추장 댁 앞 골목길에 초대형 현수막 한 장이 내걸렸는데 내용은 통행료 수납에 관한 안내문이었어요. 향후 이 지점을 통과하는 자동차는 1회 통과하는데 150원, 사람은 1회 통과하는데 50원을 납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해 오던 마을길이었는데 시청 건설과에서 포장할 당시 미 정산된 사유지 1.5㎡ 정도가 도로 한 쪽 편에 편입되어 있다는 것이죠. 흔히 말하는 ‘길막’의 서막입니다. 된장의 사주를 받은 문정의 작품이었는데 강간이 협찬을 했답니다. 만약 통행료 징수가 시원치 않을 경우 강간이 굴삭기를 동원해서 도로를 아주 훼손해버리겠다는 단서 조항이 붙어 있었어요. 물론 사람들은 치를 떨며 원성을 자아내기는 했죠. 하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서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공포 분위기 조성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거든요. 강간이 누구입니까. 성폭행 당한 후 쓰러져 흐느끼고 있는 여인의 속곳 주머니를 뒤져서 일금 2만 원을 강탈해서 시원한 막걸리로 후사를 즐길 줄 아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입니다. 언젠가는 자신의 이권사업을 훼방 놓았다는 시비가 붙은 이웃에게 칼침을 예고하는 통에 상대방은 즉시 무릎을 꿇고 제발 살려만 달라고 애걸해서 자비를 베풀기도 했다는 레전드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가장 큰 고충을 겪게 되는 사람은 추장이었죠. 현수막으로 인하여 추장 댁 출입구 쪽 도로가 절반쯤 막히게 된 것이죠. 된장 일당이 이토록 집요하게 유독 추장을 괴롭히는 이유는 매우 단순 명료한 것입니다. 일단 굴복하라는 것이죠. 경찰 조사에 나가서 공금횡령 사실을 인정하면 더 이상의 파상 공격은 중단하겠다는 조건 제시인 셈이죠. 이 무렵부터 추장은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합니다. 범 보다 주먹이 가까운 현실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정신과 치료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 맞죠?

“아직은 현피를 뜰 단계는 아닙니다.”

암울한 현실에 대해 차라리 외면이라도 해버리고 싶다는 듯 내공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혼잣소리처럼 중얼거렸어요.

“아니, 그 현피라는 게 대체 뭔데 자꾸 현피, 현피하시는 겁니까?”

박사의 목소리와 표정에는 듣기에 매우 거북하다는 뜻의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현피가 현피지 뭐 별것이겠습니까. 하하하...”

여전히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내공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도 이젠 무언가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이런 분위기의 마을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란 말입니까. 요즈음 같으면 차라리 남미나 어디로든 이민이라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기만 합니다.”

“이민 가실 비용으로 변호사를 선임하면 어떨까요? 같은 값이면 김&장 정도 되는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로펌 말입니다. 그렇지만 박사님께서는 변호사 값이 이민 가는 비용 보다 더 먹힌다는 계산 때문에 물론 반대하시리라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점이기도 합니다. 하하하...”

“지금 그렇게 농담이나 하고 있을 계제는 아니잖아요!”

곁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추장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내공에게 짜증 섞인 어투로 툭 쏘아붙였습니다. 그 순간 내공은 두 눈을 번쩍 뜨고 그런 추장의 표정을 샅샅이 살폈습니다.

“추장님, 싸움에선 먼저 화내는 사람이 반드시 집니다. 호흡을 길게 가지셔야 해요. 저 사람들이 추장님에게 원하는 것이 그렇게 안달하고 조갑증 내며 화가 나서 안달 득달하는 모습이란 걸 왜 모르십니까. 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그냥 갖다 받치고 싶으신 건 아니죠? 웃으세요. 웃어야 싸움에서 최종 승리하는 겁니다. 아니, 웃고 있는 자체가 이미 이긴 거죠. 하하하...”

대칭의 팽팽한 텐션을 우회할 수 있는 비대칭적 여유 전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이 길고 지루한 언어의 늪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지막 전투는 반드시 추장의 승리로 끝나게 될 것이란 점을 내공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 모릅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인간의 사유가 재현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말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사용되고 있는 인간 언어의 틈새를 벌려보면 인간의 언어가 인간의 언어 자신을 이중화하고 있는 작업의 공간들이 드러나 보이기 마련이란 사실을 내공은 이미 엄밀하게 자각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한 정신 승리로 이 마을을 범죄로부터 보호할 수는 없어요.”

듣기 여전히 거북스럽다는 듯 박사가 퉁명스럽게 말했어요.

“범죄에 대한 보호법익은 대한민국 형법 체계가 지켜내야 할 의무 사항일 뿐 우리들 같은 소시민들이 뭘 어쩔 수 있겠습니까. 나는 도무지 범죄와의 전쟁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낄끼빠빠’가 아니라 ‘낄빠빠빠”가 내 삶의 중심철학이거든요. 하하하...”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요새 젊은 사람들 말로 ’낄끼빠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라는 이야긴데 주로 꼰대들에게 들려주는 청량한 음료수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멋지고 세련된 조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는 ’낄끼빠빠‘가 아니라 낄 때도 빠지고 빠질 때도 빠지는 ’낄빠빠빠‘가 되고 싶다는 말씀입니다. 히히히...”

“하지만 그건 내공님의 철학일 뿐입니다. 내공님은 이미 이 마을의 일원이거든요. 빠지고 싶어도 빠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설마 저 강간 일당의 범죄자 일원이 아니시라면 말입니다.”

“그렇군요.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박사님이나 추장님 일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이 마을에서의 시각들은 조금씩 매우 조심스럽고 위태롭고 안타깝고 드디게 흘러갔습니다. 추장 부부의 업무상 횡령 혐의에 대한 경찰 조사가 시작된 지 8개월여의 시간이 흐른 뒤의 어느 늦가을 저녁의 일입니다.

“혐의 없음, 불송치 결정이 내려졌답니다. 무혐의요. 불송치요!”

전화기 저쪽 편에서 건너오고 있는 추장의 목소리는 반쯤 울먹이고 있었어요.

“잘 됐네요. 그럴 줄 알았어요. 축하합니다. 추장님이 이기신 겁니다.”

내공은 추장의 결백함이 밝혀진 사실에 대해 진심으로 안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추장의 집으로 달려가서 그를 부둥켜안고 등이라도 토닥여 주며 그동안 참으로 수고 많았다고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계속)

고맙습니다.
202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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